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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승에게 걸려온 한통의 전화가 세상을 위로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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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처 작성일18-06-20 17:15 조회78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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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승에게 걸려온 한통의 전화가 세상을 위로하네

한통의 전화가 세상을 위로하네
20186121400분 따르릉
법무법인 양재에서 이호승상임대표 휴대전화로 전화가 왔다. 지난 2015년부터사기사건을 빙자한 공안탄압이라는 이번 사건이 종결되었는데 검찰의 상고포기로 무죄확정되었다는 것이다. 무죄, 이번에 처음 들어본 말은 아니지만 이번 사건은 특별한 의미가 있어 무죄의 의미는 더욱 크게 증폭되었다. 그러니까. 20156월에 시작된 사건이며 검찰에서 201512월 이호승을 구속시키면서 보도자료를 내어 한껏 이호승이 회원들의 회비를 갈취한 것으로 악위적으로 호도된 사건이다. 보니 공안당국의 의도를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무죄라는 것에 어안이 벙벙한 느낌을 지울수 없을 것이다.
201512월 말경 수많은 사람들이 타고다니는 전철안에서 전철협 이호승상임대표 1억갈취로 구속이라는 자막이 흘러나왔다.순간,이게 뭐지? 오손도손 식사를 하던 친구들은 이호승 전철협 상임대표 철거민 1억갈취 구속이라는 tv보도를 보고 경악하였다. 이호승 상임대표 구속후에 무려 40여곳의 언론매체에서 이호승 대표 구속을 보도하였다.
정말,많은 사람들이 알도록 친절하게 검사는 피의사실을 공표하여 언론보도가 되었다.
반면에,이호승을 알거나 함께 활동했던 많은 사람들은 아니다. 검찰의 무리한 기소다. 라며 항의하기 시작했다. 이호승 자신도 사기를 빙자한 공안탄압이라며 구속후에도 불굴의 의지로 무죄를 말하면서 검사의 부당한 기소를 규탄하였다.
그러나,이호승이 구속되면서 희비는 엇갈렸다. 이호승이 마치 엄청난 돈을 받은것차럼 호도되면서 이호승이 겼었던 아픔과 희생은 뒤로한체 얼마나 챙겼냐? 하는 어처구니없는 물음이 확산되었다. 사기라는 말자체가 오르락 내리락 하는 처지에 이중삼중의 고난을 감당해야 했다.
그런데 말이다.
이번 사건과 매우 유사한 사건이 2007년도에도 있었다,
그당시에는 전철협내부의 부역자들이 감쪽같이 이호승과 전철협을 속이고 헤처먹었다면 이번에는 이호승과 전철협은 당시의 일을 교훈삼아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많은 노력을 다하였다.
<이호승>은 지난 80년대말 노태우정권의 분당개발에서 개발지역주민의 인권과인격을 파괴하며 가족공동체를 파괴하는 개발은 안된다며 투쟁의 선봉에 서서 오늘에 이르고 있는 사람이다. 개발의현장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려고 몸부림치면서 토지와주택이 부동산으로서의 상품보다는 삶의보금자리로서 자리매김을 하도록 시민운동을 하는 시민운동활동가이다.
 <이호승 저서 회상에서 발제>
87년 민주항쟁이후 대통령을 직접 선출하게 되어 정치적 민주주의는 발전하였는지 모르나 민생문제의 대표적인 부문인 부동산(토지와 주택)문제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88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경기가 과열되고 서울의 집값은 1년 사이 40%가 껑충 뛰었다. 이 당시 87,88년의 주택가격상승률은 각 13.2%14.6%로 상승하였고 자가상승률은 14.7%27.5%로 급등하였다. 이에, 88810일 부동산종합대책이 발표되었지만 집값 폭등과 그에 따른 부작용은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민심은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되었다.
여기저기서 주택가격상승에 따른전.월세 부담으로 자살하는 세입자가 속출한 것이다.
287민주항쟁이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었다.
세입자들이 폭동을 일으킬 수도 있는 민심이었다.
노태우정권은 수도권 주택가격안정을 도모해야 하는 정치적 압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87민주화 항쟁을 겪은 노태우정권으로서는 큰 부담이아닐 수 없었다.
 
내가 글을 쓰기 직전인 2006년에 분당 서울대병원은 부동산과 관련된 설문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서울 및 수도권지역 7개 기업체 직장인 20대에서 60398명을 대상으로 부동산스트레스에 대해 설문조사를 실시하여 발표하였는데 응답자 가운데 77.6%309명이 최근의 집값폭등사태를 지켜보면서 신경이 예민해지는 스트레스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응답자 58.2%232명은 주택가격 폭등사태 때문에 불안하고 초조한 증상을 느낀 적이 있다고 밝혔다. 또한 열심히 일해 저축하더라도 부동산 재테크만 못하다는 생각에 근로의욕이 떨어졌다고 응답한 사람이 부려 79.8%318명이나 되었다.
이처럼 지금이나 80년대 말이나 부동산가격상승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스트레스는 심각한 수준이다.
최근에도 부동산문제는 심각하여 참여정부라고 말하는 노무현 정권에서는 강남 발 아파트 재개발로 촉진된 부동산문제와 판교 발 부동산광풍으로 국민들에게 심한 좌절감과 스트레스를 안겨 주는 등 국토균형발전의 부작용으로 인한 민심이반을 우려하여 2003년 참여정부 출범이후 10여 차례의 부동산 대책이 나왔지만 오히려 주택가격폭등으로 서민주거안정은 멀어져만 갔다.
89년에는 지금보다도 더욱 심각하게 사회문제로 대두된 부동산사태를 노태우정권이 방치할리 없다.
노태우정권은 성난 민심을 달랠 수밖에 없었기에 먼저, 수도권주택가격 안정을 겨냥해야 한다는 참모들의 의견을 마당들여 주택 200만호 건설을 발표하게 된다.
신도시 개발로 수도권주택수요를 충족하여 주택가격안정을 도모한다고 하였다. 90년 서울의 주택 보급률이 57.9%였으며 수도권은 63%정도였기에 노태우정권의 신도시 발표는 설득력이 있었다. 그러나 이 같은 공급론자 들의 요구를 수용한 노태우정권은 국토균형개발을 통한 민심회복에역점을 두고 분당 등 신도시개발을 서두른 것으로 본다.
정치적으로 부동산문제를 해결하려고 한 것이다.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한 응급처방으로 분당, 일산등 수도권 5개 신도시를 건설하여 공급을 확대하여 주택가격을 잡는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급선무였다.여기에 방해하는 세력은 정부의 정책에 반하는 사회불안조성세력으로서 엄단할 필요가 있었다.
분당택지개발은 밀어붙여야 한다. 가능한 빨리 밀어붙여서 아파트를 건설하여야 한다. 그리고 아파트를 짓기 전에 분양하여야 한다. 이것이 토지공사에 떨어진 그 당시의 특명일 것이다.
89427일에 분당신도시 개발게획이 발표되고 89620일 분당지구개발사업소가 설치된다.
600여만 평의 땅을 불과 6개월 만에 강제수용하고 11월부터 분당택지조성 착수 및 시범단지가 전격 분양된다.
분당택지개발의 공시적인 공사사업기간은 1989427일부터 19951231일이지만 1991930일 시범단지 첫 입주가 된 것을 보면 그야말로 초고속으로 분당은 개발된다.
나는 이글에서 이같이 초고속으로 개발되는 분당에서 전체 주민의 약 70%2,700여 세입자들이 오갈 데가 없어 생전권투쟁을 전개한 이야기를 쓰려고 한다.
89427일 발표이후 89년부터 철거를 하기 시작한 토지공사의 부당함에 맞서 8911월경부터 91430일까지 분당세입자생존권투쟁의 실화를 이야기 하고자 한다.
89년 노태우정권은 분당세입자들에게 4인 가족 기준으로 430여만 원으로 이사 갈 것을 강요하였다.분당세입자들이 분당을 떠나 다른 곳을 갈 때 인근 방값은 보통 보증금이 천여만 원씩 하였다.결국, 분당에 살던 세입자들은 시골로 가던지 비싼 월세방으로 이사 가던지 알아서 하라는 것이며 정부는 분당세입자에 대해 어떤책임도 없다는 것이다.
속설에 의하면 분당에 살던 개도 만 원짜리 돈을 물고 다닌다고 하였지만 분당세입자는 분당개발로 삶의 터전이 유린되어 가족이 붕괴되며 가족공동체가 흔들린 참변을 겪은 것이다.
돈 몇 백 만원이 없어 인간으로 살기를 포기하라는 노태우정권에 생존권투쟁으로 저항할 수 밖에 없었다. “
 
 <이호승>1991430일 분당 승리를 뒤로하면서 92년 경철협 93년 전철협 창립의 주역으로 다시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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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말이다..
이번 사건은 정확히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된다.
전철협이 고속도로 성장하면서 개발 주도세력과 부역자들에게 위협이 되었는데 전철협 지도자 이호승을 주저앉히거나 방해하는 자들에게 댓가를 지불하는 충격적인 사건들이 발생되기 시작하였다. 1980년대말부터 철거민들이 이호승주변으로 모이는 것을 막기위해 몇차례 집시법으로 구속시키는등 탄압을 했던 공안세력들이 빠지고 토건마피아들이 형성되어 내부에서 불만을 가진사람이나 부역자들을 만들어 사기사건을 유발시키는 변형된 탄압이 시작된것이다. 2005,6년경부터이다. 당시 이호승은 올바른 개발촉구 전국순회집회의 마지막 집회인 분당(판교)집회에서 집시법으로 구속된 2004531일 사건으로 한달반가량 구속되었다가 집행유예를 선고받아 집행유예 기간이라 집행유예기간이 끝나면 또 활동하는 것을 막기위해 2006112일 사건을 야기하였다. 2006112일 사건이후 이호승은 방향을 틀어 정치에 뛰어들었고 대통합민주신당 경기도당 위원장으로 선출되자 이들은 교묘한 방법등을 동원하여 7건의 고소,고발을 자행하는 방해공작으로 결국 이호승은 2008년에 통합민주당 경기도당 위원장 임기를 마치고 정치를 떠나 전철협으로 복귀한후 뒤를 돌아보니 전철협을 파멸시키고자하는 일련의 행태들이 고스란히 드러났으며 이를 파헤치려 하자 2012년부터 고소,고발사건이 재발된 것이다.
 
1980년대부터 이권과 비리 그리고 부패와는 거리가 먼 사람을 억지로 짜맟추기식으로 범죄자로 몰아가니 여기 저기 잘못된 것이 드러나고 2012221일 대검찰청앞에서 철거민 피빨아먹는 이호승 처벌하라는 거창한 구호와 함께 기자회견을 한후 고소하였지만 증거불충분으로 검찰 무혐의 처분 되었는데 그 뒤에도 음해를 자행하다가 2014년 출판물에위한 명예훼손 고소사건이 발생되어 약식기소되었으나 정식재판을 청구하여 1,2심무죄와 결국 대법원 무죄가 선고되었으며 20156월과10월에 이호승 구속하라는 기자회견에 이어 이호승 구속영장이 청구되어 20151224일 구속되었는데 검찰은 기소되기도 전에 이호승구속을 언론에 알려 전국의 수많은 국민들이 알도록 친절(?)을 베픈 것이다. 이후 201669일 보석으로 석방되었다가 검찰은 1심구형에서 3년을 구형 하였지만 20179131심에서 무죄 그리고 201861일 항소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었는데 2018612일 검찰의 상고포기로 무죄확정되었다는 전화가 온 것이다.
 
결국,2005경부터 전철협에 침투된 자들이 원하는 것은 2006112일 분당경찰서앞 사건은폐와 그 당시 부터 이호승과 전철협파멸을 조건으로 뒷거래를 지속적으로 이어져오는 것이 드러나는것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으로 이호승을 파멸시키고자 광분하는 것이다.

그리고 부역자들을 부추기며 전철협성장을 방해하는 토건세력이 하나가 되어 저지른 사건이다.
 
무섭다.
이들의 행태는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돈이면 뭐든지 한다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간말종의 길을 걷고 있기에

두렵다.
이런 일을 자행하는 자들이 국가공권력과 한패가 되었을 때 무리한 기소가 이뤄지고 결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너무 많은 사람에게 준다는 것이다.
 
치밀하게 2004년에 전철협에 침투한자들이 아직까지도 전철협분열을 획책하며 돈벌이를 하고있다는 것이 어처구니 없으면서 2006112일 사건당시 경찰에 끌려가며 외쳤던 전철협회원들의 울부짖음과 한을 되새기며 이호승이 지키고자 했던 가치 그리고 전철협이 우리사회에서 왜! 필요한지 다시 각인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따르릉! 법무법인 양재에서 온 한통의 전화가 토지정의와 부동산투기근절 그리고 철거민인권과 인격을 담보하는 담대한 벨소리가 된 것이다.
201861일 선고의 의미를 되새기며 다시는 이런 사건이 발생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다.그동안 힘든 세월을 보내며 흔들리지 않고 전철협을 지켜온 이호승상임대표에게 감사를 드린다.

아울러,법무법인 양재의 최병모변호사님,안희철변호사님께도 머리숙여 감사를 드린다.
전철협은 이호승의 희생을 결코 헛되이 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더욱 힘든일이 닥칠지라도 굿건히 용기를 내며 전진할 것이다. 하지만 불의에 진저리를 느끼며 이를 종식시키기위한 끌어오르는 분노는 참지 않을 것이다.
전철협은 토지정의와 부동산투기근절 그리고 철거민권익을 위해 이번 이호승상임대표,엄익수 공동대표의 무죄확정을 계기로 더욱 분발할 것이다.
 
전철협은 이번 사건당시 이호승 상임대표가 2013년 신장암수술이후 암투병중임을 안타갑게 생각했다. 이호승 상임대표는 80년대말부터 90년 집시법으로 구속되었고 엄청난 탄압을 받아왔던 분이다.2004년 집시법으로 재차 구속되었으며 이번 2015년 구속과정을 보면서 자기자신을 버리고 가족들의 안위보다는 토지정의와 철거민권익에 앞장서온 지도자를 도움을 받으러온 자들이 저지른 행태에 분노를 느낀다.

 
철거민희생을 최소화해온 이호승의 지도력을 우리는 믿는다. 지난 80년대부터 극렬한 투쟁의 현장에서 단단한 비폭력정신으로 전철협을 이끌어온 지도력을 믿는다.
 
며칠전 따르릉! 전화한통이 각박한 세상에서 상처받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었다. 이호승상임대표에게 무죄다 라는 내용을 전달받는 순간 벅찬 가슴에 기쁨을 추체할수 없어 이호승 무죄를 우리사회에 알린다.
 
2018615
전철협 창립25주년 기념사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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